2025.01.29-30. 여수

설 연휴를 틈타 여수에 왔다..설 당일에 도착해서 첫날엔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었고..연 가게들도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곳들이라 혼자 가서 밥을 먹기가 애매했다. 사실 여행의 목적은 호텔에서 바다 보면서 쉬고 책읽고 작업하고 등등..재충전에 있었기 때문에 29일 점심 즈음 여수에 도착한 후로 그날 밤까지 계속 호텔에 있었다. 대설 때문에 연착된 기차에서 1시쯤 내려서 이순신 광장에 갔다. 딱히 할 게 없어서 광장을 멍하게 봤다..벅벅 그래서 그냥 캐리어 끌고 걸어서 숙소 근처에서 김밥먹고 카페 갔다가 호텔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돌산갓..모히토를 마심..갓 향이 났다

이순신 광장이랑 기차에서 본 눈

갓..모히토..랑 숙소에서 본 바다

일부러 바다 보이고 테이블 있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혼자 있기 너무 아까웠다. 진짜 완전 늘어져서 만화책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공부도 좀 하고 아주 좋은 하루를..

오홍홍..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오늘은 일어났는데 갑자기 글을 너무 쓰고 싶어서 앉아서 한참 논문 내용을 상상(?)하면서 메모장에 뭔가를 갈겨썼다..혼자 있으면 너무 우울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주변에 누가 있는게 편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한데 혼자 있는게 더 힘들다. 정말 좋은데 힘들다. 자꾸 통제를 못하게 되고 하여간..편한 것과 힘든 것은 공존할 수 있는 것 같다..

더 혼자 멍때리면 정말 주저 앉아서 3일을 보낼 것 같아서 10시쯤 밖으로 나갔다. 분명 오기 전에 엑셀(ㅋㅋ)에 계획을 다 세워 왔는데 첫날 와보니 설 당일이라 못하게 된 것들이 많아서 어제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숙소가 돌산읍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면 여수 시내로 나가기가 어려워서 버스를 타고 다리 건너 대충 시내같은 곳에 내렸다. 그 이후로는 계속 걸어다녔는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요새 좀 체력이 바닥임 3만보 거뜬했는데 이젠 2만보만 걸어도 힘들다..

아마 엑스포쪽이었던 것 같은데 다니다가 우연히 ‘이탈리안 브런치(비건 가능)’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린 가게를 발견해서 헉 하고 들어갔다. 여수에 비건 식당 진짜. 진짜 없음 순천 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베이커리 한두개 나오더라(못감 멀어서)..

비건 가능 브런치 식당(딱히 브런치는 아니던데 메뉴가) 짱마싯슴

이탈리안 브런치 포 유 였나..이름이 뭐 그런거였다. 정원도 있고 안에 약간 그 군산에 엄청 오래된 피자집 있는데 딱히 인테리어가 비슷한건 아니었는데 분위기가 좀 비슷했다. 약간..투박하지만 짱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을 주시고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쿨하고 동시에 분주하다는 면에서..신기하게 메뉴 하나를 고르면 전식 세개(..!)와 디저트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그냥 토마토 파스타 제일 싼거 먹고 전식 세개랑 디저트랑 커피까지 얻어먹음..가격도 2만원..마히허따 비건으로 달라고 따로 말은 안했고 그냥 락토오보로 먹었다.

도마도가 덩그라니..

근처에 벽화마을이 있다길래 또 있다면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설렁설렁 걸어서 갔다. 날씨도 따뜻하고 바다도 예쁘고 걷는데 기분이 좋았다..걱정 없이 이런 시간만 가득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순신 관련 유적이 있었고 벽화도 이순신이었다.

그리고 걷다 굿즈샵을 발견했고 결코 지나칠 수 없어 들어갔다가 약간의 소비를 했다..설연휴에 영업하는 굿즈샵이라니 귀하다. 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하고 놀았다..사실 서울에서 하나 여수에서 하나 별 차이 없는 행위들이었는데 바닷가에서 하니까 괜히 기분이 좋긴 했다. 국내여행을 혼자 다니는 건 좀 어려운 일 같다. 그 지역에 갈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음식이 그런 역할을 하지만 나는 딱히 음식에 관심이 없고 못먹는 것도 많아서..강릉은 서점과 영화관 부산이랑 전주 무주는 영화제 이렇게는 명확히 갈 이유가 있으니 거의 매년 가는데 다른 곳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학회가 좋다..가면 할 것(내 발표) 있고 볼 것(남의 발표) 있고 먹을거 신경 안써도 주고 지역 구경도 남는 시간에 실컷 할 수 있고..사회학회 좀 여기저기 잘 돌아가며 열리면 좋겠다 샤대 연대 좀 빼고 랜덤 돌립시더..

벽화마을은 어느 지역에 가나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사물놀이 같은거 그려져 있고 하여간 슥 보고 다시 이순신 광장으로 쭉 걸어갔다. 눈도 안오고 설 당일 지났다고 조금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고앵님도 봤심

딸기모찌가 유명하다길래 하나 먹으려 했더니 6개부터 팔더라..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온 길을 쭉 걸어서 엑스포 쪽을 지나 오동도로 걸어갔다. 오동도로 가는 길은 방파제 옆에 조성돼 있었는데 산책하기 너무 좋아 보여서 지역 주민들이 부러웠다. 오동도 내부도 산책로가 엄청 잘 돼있더라..근데 동백꽃은 별로 없었다

ㅈㅅㅈㅅ..

그저 하염없이 걸은 하루..걷고 또 걷다가 섬 밖으로 다시 나왔고 무려 14000원(ㅠㅠ..)을 내고 해상 케이블카를 타봤다. 근데 8인승 차에 혼자 타서 좀 좋았음..여수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남도 바다는 대체로 엄청 잔잔한 것 같다. 섬이 많아서 그런가..잔잔하고 윤슬도 해 떠있을 때는 거의 항상 보이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평생을 수도권에서 보낸 인간의 환상인가 이런 바닷가에 살면 마음이 좀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근데 엄마가 자기 친구가 고등학교 때 바다 보면서 이 바다가 날 (지겹게 해서) 죽이겠구나 빨리 서울로 가야지 라고 했다는 게 갑자기 떠올랐다..

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케이블카는 오동도 입구와 돌산읍을 연결한다. 숙소가 돌산읍 반대편에 있고 발에는 물집이 잡혔지만 그래도 그냥 걸어서 숙소까지 왔다. 걷다 보니 오동도에서 본 것보다 동백이 훨씬 많이 피었길래 좀 허탈했다. 하지만 오동도는 좋은 섬이었음..오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무슨 바게트 버거라는 것을 고기 빼고 시켰다. 정말 안에 샐러드만 들어있기는 했지만 아삭아삭 맛있었다..해지는 바다는 숙소에서 보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이런 여행을 오면 오기 며칠 전부터 좀 긴장을 한다. 나는 혼자 있으면 참을 수 없이 어떤 행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제는 참지 못했고 좀 아파서 많이 후회를 했다. 오늘 밤에는 안그러고 지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그럴 때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 라고 생각하는데 혼자 있으면 또 다시 그러게 된다.

어제 밤에 섭식장애 논문을 잠깐 수정했는데 정말 리터럴리 굶고 속을 긁어내며 쓰는 논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교차성 페미니즘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성들이 이 경험을 탈병리화하고 그래서 페미니즘이 여성을 보호하는 방식을 이렇게도 찾아볼 수 있다는..그런 문단을 쓰다가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해본 건 아니고 일단 내가 정말로 페미니즘에 의해 보호적 효과를 느끼고 있는가..정도의 고민이 좀 들어서. 아냐 내가 못느껴도 남들이 느꼈다니까 써도 괜찮겠져(써야져) 근데 그냥 나는 언제쯤 괜찮아지나 우이이…하는 생각이 들었슴다. 아무튼 유꾸리 쉬었고 서울에 돌아가면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한참동안은 글이 읽히지도 쓰이지도 않았다. 이제는 좀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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