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머무른 나머지 1.25일에 대한 일기
공개글로 일기를 정말 오랜만에 쓰고 있다. 어떤 부작용 같은게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일기를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저분한 부분과 과잉된 자의식을 딱히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그런..
월요일에는 일어나서 고래책방에 갔다. 생각보다 그냥 서점이더라 큰 서점(책방과 서점의 차이를 나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걸까)..세령이랑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도 비슷한 인상이었던 것 같다. 커피도 팔고 자리도 좋아서 한참 앉아있었다. 지금은 화요일 아침인데 지금도 기차를 기다리면서 같은 자리에 앉아있다. 어제는 돌봄살인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다는 못읽었는데 까다로운 현실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 완전한 허구로 – 풀어내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걸지 궁금했다. 이런 문제를 다루면 나는..당사자의 의도에서 뭐라도 벗어날까 수십 번을 검토하는데 그건 어찌됐든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용기는 좀 부럽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그런 류의 과감함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서..마저 읽어야지

한참 앉았다가 중앙시장에 가봤다.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았고 점심시간이었는데 음식 생각이 안나서 그냥 보이는 구제샵에 들어가서 꽤 낡은 원피스를 하나 샀다. 늦은 오전 시간대의 전통시장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닥이 젖어있고 매대는 1/3쯤 비어 있고 사람들이 좀 천천히 걷는데, 하여간 뭔가의 흔적은 많고 사람들은 오늘 바쁠 일은 거의 다 지나간 것처럼 약간 힘을 덜 주고 있다.

점심 즈음 <할머니가 …(제목 까먹었음..)> 를 신영극장에서 봤다. 나와서는 버스 타고 강문해변으로 갔다. 바닷가를 잠깐 걷다가 모래에 앉아 있다가 분명 여기가 세령이랑 왔던 곳 같아서 세령이 생각을 했다. 나는 세령이를 아직도 세은이라고 부르고픈 마음이 큰데 세령이가 된 후에 그와 보낸 시간이 매우 적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때는 세은이가 정말 복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어려우니 따지지 말고 그냥 괄호치자, 라고 생각한 건 지금 생각해도 나름 괜찮은 결정이었다. 왜냐면 지금은 그 때의 세은이가 조금씩 이해가 가고 있으므로..이해가 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그리운 세은이
아 생각났네 재작년인가?에도 강릉 왔었네..근데 아파서 정신 못차리고 누워만 있다 갔었다 그 이틀은 잘 기억이 나는데 지리적으로 그 일을 강릉에 연결짓지를 못하고 있었다..ㅋㅋ미안합니다..톺아보니 별로 한 일이 없다 종일..해변에 앉아있다가, 유리공예품을 파는 곳이 있어 구경하다가 은반지를 하나 샀고 카페에 앉아서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별 생각 없이 몇 시간 앉아있다가 갑자기 불안감이 들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문득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알 수 없는 장애학 모임 공지글을 만들어 여기저기 뿌렸다.


여러모로(그릇도 자세도) 지저분함 지저분한 건 좋아

누워서 증폭되는 불안감을 느끼다가 저녁 시간대에 신영극장에 가서 룩백을 봤다. 비염때문에 쿨쩍거리며 오열하는 사람이 됐다..여러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처음엔 Don’t look back in anger에서 따왔다고 들어서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말자 정도의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어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무력감과 그걸 어떻게든 직면하고 승화시켜 보려는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슬펐다. 관계에서든 그 밖의 것에서든 뭔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은 너무나..짓눌리는 느낌을 준다. 뭐가 짓눌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프고 무겁고 그렇다. 그렇게 짓이겨지는 순간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겁고(너 m이야?) 이 생각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해 왔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뭔가를 직면하는 순간 대체로 그 문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쿄모토를 정말로 더 이상 볼 수 없으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현실화되는 순간 후지노는 무너지지만 동시에 사실 나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쿄모토와 공유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깨달음(과 그에 수반된 고통)까지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면 더 이상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려운 일은 없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고통이 끊임없이 삶에 침투하겠지만..그런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건 떠난 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랬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뭐가 문제였던 걸까, 등등의 자질구레한 생각들을 무수히 반복하고, 동시에 이 생각들을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떠난 사람을 데려올 수 없다는 사실을 매번 지난하게 느끼면서 관계에 대한 애도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죽어 떠난 누구이든 살아서 떠난 누구이든..한편으로는 왜 항상 더 궁지에 몰린, 그러니까 더 위태로운 사람이 관계에서 더 우위를 차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건지 궁금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이 관계가 더 필요한 것은 후지노였고 더 타격을 받은 것도 후지노였고..관계 속에 잠식되어 있을 때는 둘 간의 우위가 있다고 자명하게 믿어지지만 사실 조금만 밖에서 보면 더 매달리는 사람도 더 도망가려는 사람도 어쨌든 그런 관계가 없으면 무너진다는 걸 느낀다. 더 매달리는 사람은 그 관계가 없어지면 자신이 무너질 거란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라리 더 강한 사람이다. 과거에 망친 여러 관계들이 생각났다 나의 문제를 전가하고 결국 끝내버린 관계들을..돌아보면 주변에 나에 비해 훨씬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넓혀준 것 같다. 소연이가 영화 보고 많이 울었댔는데 같이 보고 크레페나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임당동성당에 들렀다. 아무도 없었고 본당도 닫혀 있는 것 같았다. 본당 안에 들어가서 보면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쁠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성물방에라도 가보려 했는데 화요일은 휴무일이랬다.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세례받을 때 세례명을 지어주신 신부님도 성공회 강릉교회에 계신데 다음에는 일요일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강릉역까지 걸어가면서 부러 큰길의 뒤쪽에 있는 후미진 길을 걸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많아서 좋았다. 화사한 색의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이 왠지 좋다..첫날에는 못봤는데 강릉역 앞에 올림픽호랭이가 있었다 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올림픽이 벌써 6년은 지난거네 신기하다..올림픽 개막식을 엄마의 옛 제자랑 같이 우리집 안방에서(상황 진짜 이상함) 봤던 기억이 있다. 잘 지내시려나 건강하십쇼..역에 짐캐리도 있었다


호돌이 이름 수호랑이라고 써있네 밑에..귀엽다..
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으면 생각이 정말 많아지고 그래서 갑자기 주변인들을 괜히 원망하는데 그런 바보행동에는 이내 부끄러움이 따라오고 그 감정들을 느끼다 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된다. 이번에도 몇 차례 그랬던 것 같다..죄송하구요 네네..그냥 귀엽게 봐주세요. 서로 못난 짓 하고 걍 받아주고 그렇게 지내는거 아니겠습니까 다들. 제가 뭐 때린 것도 아니고 속으로 원망 좀 한거니까요. 이제 정신차리고 돌아가야지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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