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0.

공부 잠깐 쉬다가 한 생각

어제 트위터에서 멧비둘기 울음소리로 비트 찍은 음악 영상을 봤다.

누가 새소리 녹음해서 이거 무슨 새냐고 물어보면서 시작된 타래였는데, 그 음성의 주인은 멧비둘기였고 사람들이 이걸로 비트를 찍고 놀고 있었다.

멧비둘기는 침엽수림에 둥지를 틀어서 산다. 가끔 보면 참새랑 같이 다니던데 왜 같이 다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격이 꽤 좋은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멧비둘기는 다산관 올라오다 보면 하루에 다섯 마리쯤은 볼 수 있는 새인데, 잘 눈에 띄지도 않고 눈에 띈다 해도 다들 별로 싫어하지는 않는다.

한편 두어달 전 학교 고양이보호 동아리에서 비둘기가 고양이 밥을 훔쳐(빼앗아? 하여간 둘 중 하나였다)먹으니 비둘기가 다니는 난간 주위에 뾰족한 걸 설치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일단 비둘기가 고양이 밥을 빼앗아 먹는다는 프레임이 놀라웠고, 이에 그치지 않고 비둘기의 안위를 고려치 않는 조치를 취하자는 말이 나온 것에 놀라웠다. 여차해서 제안이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우리 학교에서 고양이 밥을 ‘빼앗아’먹는 비둘기는 주로 집비둘기다. 집비둘기는 산(메-ㅅ)이 아니라 도시에 밀착해 살아간다. 집비둘기의 조상은 바위비둘기이다. 바위비둘기는 절벽과 바위 틈새에 둥지를 틀고 산다. 그래서 집비둘기도 절벽과 바위와 유사한 장소에 둥지를 짓는데, 주로 건물의 난간이나 옥상이다. 집비둘기는 다산관까지 가는 길에서는 볼 수 없다. 아침에 신촌역 시멘트길 따라 요가 가다보면 하루에 열마리쯤 본다. 집비둘기는 참새랑 딱히 어울려 놀지는 않는 것 같다. 보통 자기들끼리 모여서 뭔갈 정신없이 쪼아 먹고 있다. 길가다 마주치면 주로 조급해보인다 라는 생각을 하거나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위키백과는 이러한 집비둘기의 생태를 ‘인간 의존적인 생태’라는 단어로 명명하면서 도시공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실 멧비둘기로 비트찍던 분들과 집비둘기 쫓아내려는 분들은 서로 관련이 없다. 트위터에 멧비둘기 소리를 올린 사람들이 딱히 집비둘기를 싫어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을 뿐더러 아마 내 탐라에 섞여 들어온 이상 특정 동물종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아닐거다(아닌가?). 반대로 집비둘기를 쫓아내려는 분들이 멧비둘기에는 배척의 감정을 덜 갖는지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두 주체가 다른 두 대상에 대해 각각 가진 태도를 동시에 보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건데, 그래서 이 얘기가 결코 엄밀한 얘기는 아니다.

아무튼 내가 어제 멧비둘기 비트를 보고 한 생각은 바보같지만ㅋㅋ왜 멧비둘기는 (1)비둘긴데 얘네는 마치 (2)비둘기가 아닌 것처럼 대우를 받고, 집비둘기는 똑같이 (1)비둘긴데 얘네는 (2)비둘기로 대우를 받냐는 거였다. (1)비둘기는 생물학 체계 내에서 분류된 ‘비둘기목 비둘기과’의 줄임이다. (2)비둘기는 도시인들 또는 현대인들이 형성한 ‘비둘기’라고 이름붙여진 관념(idea)이다. (2)는 (2)를 생각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하지만 동시에 어떤 전형은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주체에게 있어 (1)과 (2)는 일치하지 않는다.

(2)를 구성하는 몇 가지 특성들이 있다. (적어도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 (2)는 회색이거나 아주 가끔 흰색이고, 지나치게 왜소하거나 지나치게 비대하고, 목 주변이 번쩍거리고, 때론 발이 하나만 있거나 발가락이 없으며, ‘꼬질꼬질’하고, 공원 벤치 주변에서 정신없이 뭔가를 쪼아먹는 등의 특성을 갖는다. 이 특성들을 경험적으로, 반복적으로 인식하면서 (2)의 전형, 그리고 (2)를 대하는 태도가 형성된다. (1)은 분명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고는 있겠지만, 생물학이나 농산림업에 종사하지 않는 한 일상에서 거의 인식되지 않는 범주이다. 그래서 사실 (1)은 (2)를 포괄하지만 도시의 일상 세계에는 (2)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1)에 대한 (2)의 차집합은 도시에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여겨진다.

여러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1)에 대한 (2)의 차집합이 인식되지 않는 것은 모종의 문제를 불러 일으키나?

: 딱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2)의 전형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다들 멧비둘기를 별로 싫어하지 않듯이 (1)에 대한 (2)의 차집합이 인식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1)에 대한 (2)의 차집합에 속하는 개체들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2)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1)에 대한 (2)의 차집합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나?

: (1)에 대한 (2)의 차집합은 애초에 ‘비둘기'((2))라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없어 보인다. 멧비둘기떼가 갑자기 신촌역을 덮치지 않는 한..

…(등등)…

-(1)과 (2)의 불일치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 두 가지 내용을 적어둘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비둘기, 즉 (2)라는 범주는 허위이며, 우리는 (1)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동물권 운동에서 돼지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이 방식이 비슷하게 사용되었다. “우리가 흔히 돼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전형은(아마 농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돼지 –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먹을 것을 매우 좋아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는 ‘본래의 돼지’가 아니다. ‘본래의 돼지'(자연 상태의 돼지,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돼지)는 매우 깨끗하고 진흙 목욕을 즐기며 우리의 전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2)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고시키기 위해 (1)에 대한 (2)의 차집합을 부각시켜 본다. “우리가 흔히 비둘기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전형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비둘기에는 집비둘기, 바위비둘기, 멧비둘기와 같은 수많은 종류가 있고,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둘기가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2)만을 비둘기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성격의 비둘기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둘기는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며, 깨끗하고 성격 좋은 비둘기도 많다”.

하지만 이 방식은 비둘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돼지의 경우 ‘인식된 돼지’와 ‘본래의 돼지’는 동일한 대상의 다른 상태로 여겨졌다. 즉, 깨끗한 돼지 한 마리가 모종의 이유들로 인해 지금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돼지의 전형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돼지의 경우에는 (1)에 대한 (2)의 차집합을 부각시키는 방식이 유효했다. 하지만 비둘기의 경우 (1)에 대한 (2)의 차집합은 (2)와는 완전히 다른 대상으로 여겨진다. 자칫 위와 같은 시도는 “집비둘기는 지저분하고 고양이 밥을 빼앗아 먹는 종이지만, 멧비둘기나 박설구, 왕관비둘기는 그렇지 않다”는 논조로 전해질 수 있다. 따라서 (1)과 (2)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리고 그 불일치의 강조만으로 (2)에 대한 낙인지우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낙인의 대상이 더 명확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둘째로), 중요한 것은 불일치 자체가 아닌 불일치의 원인을 강조하는 것이다. ‘왜’ (1)과 (2) 사이의 불일치가 생겼는지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비둘기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전형은 잘못된 것이다. 사실 비둘기에는 집비둘기, 바위비둘기, 멧비둘기와 같은 수많은 종류가 있고,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비둘기가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2)만을 비둘기라고 생각하기에 다른 성격의 비둘기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둘기는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며, 깨끗하고 성격 좋은 비둘기도 많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집비둘기가 다른 비둘기와 구별되어 유일한 (2)’비둘기’로 인식되는 데에는 인간 위주의 공간 구성과 종차별적 패러다임이 큰 역할을 했다. 대도시를 만들기 위해 인간 편의에 보탬이 되지 않는 모든 존재를 제거하거나 비가시화하다 보니, 높은 바위와 절벽, 수풀과 숲은 사라지고 고층건물과 마감된 길들만이 남았다. 가시적인 공간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고층 건물과 아스팔트/시멘트에 적응할 수 있었던, 바위비둘기의 후손인 집비둘기 뿐이었다. 다른 비둘기들은 조금 남은 산(노고산..)을 찾아 숨어 들어가 버렸다. 도시적 공간에서도 살아남은 집비둘기들은 비가 거리에 고이지 않는 한 몸을 씻지 못하고(사실 집비둘기는 치장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여건이 안될 뿐이지), 누군가 유기한(혹은 시혜적으로 급여한, 혹은 고양이의 몫으로 남겨둔) 음식물을 먹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연유를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 않고, 결과로서(의 (2)’비둘기’만을 지나쳐 간 사람들은 ‘비둘기’를 부정적 존재로 인식한다. ‘비둘기’의 깃털 색, 번쩍거림, 울음소리, 몸짓은 피해야 하는 대상임을 알려주는 기호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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