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한 위험>은 대담집이고 특별히 정리할 내용이 있는게 아니라서 간략히 의미 있는 인용구와 생각들만 정리하..려다 보니 푸코의 1969년 논문 “What is an author?”와 연결지점이 많이 보여서 함께 정리합니다.
<상당한 위험>은 미셸 푸코와 비평가 클로드 본푸아 간의 열 번의 대담 중 첫 번째 대담(68년)을 기록한 책이다. 본푸아의 질문을 따라 푸코는 자신의 글쓰기 기원, 성격, 지향점 등을 설명한다.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고는 하지만, 푸코는 짧은 대담을 통해 언어 작용 전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대담에 드러난 생각은 이후 69년에 발표한 논문 “저자란 무엇인가?”로 연결되는 듯 하다.
푸코는 스웨덴에서 체류했던 경험을 되살리면서 “언어작용이 [자신만의] 일정한 두께와 정합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p.18)을 설명한다. 즉, 언어작용은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작용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관점을 발견할 수 있”(p.19)다. 또한 언어작용은 고유한 법칙을 따르면서도 동시에 랑그(langue)의 구조를 따른다. 그렇기에 언어작용은 “실재하는 담론의 기능과 출현 양식에 대한 것, 실제로 말해진 사물에 대한 것”(p.25)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낯선 나라를 구성하는 장소 없는 장소”(p.19)가 된다.
“저자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논의를 더 자세히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 언어작용이란 주체가 탄생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구조 또는 체계이자, 스스로 작용함으로써 주체를 만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언어작용은 그 자체로 “주체 없는 앎”(p.83)이다. 이러한 통찰은 이 논문 전반에 제시된 “저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연결된다. 논문 “저자란 무엇인가?”를 통해 푸코는 특정한 담론적 실천의 기능적인 조건을 결정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푸코에 따르면 동시대 글쓰기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윤리적 원칙들 중 하나는 오늘날의 글쓰기가 ‘표현’의 필수성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오직 자신만을 언급한다(“it only refers to itself”)는 것이다. 하지만 글은 내면성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배치(deployment) 안에서 인식된다. 즉, 글은 그것이 지시하는 내용 자체보다는 기표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글쓰기의 본질적인 기반은 작품 행위에 관련된 숭고한 감정이나 주체를 언어에 삽입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글쓰기의 기반은 글쓰는 주체가 끝없이 ‘사라지는’ 틈을 만드는 데 있다.
주체의 끝없는 상실은 ‘ 글쓰기와 죽음의 밀접한 연관’이라는 사유로 이어진다. <상당한 위험>에서 푸코는 자신의 글쓰기를 죽음과 연관시킨다. 푸코에게 있어 글쓰기의 즐거움은 “타인의 죽음”, 또는 “죽음 일반과 상호작용”(p.26)하는 것으로, 푸코는 죽음이라는 확증, 그리고 그로부터 생겨나는 단절이 확립될 때에야 말이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푸코는 글을 통해 수행하고자 하는 목표는 “진단을 내리는”(p.32) 것, 즉 죽은 것(과거)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렇기에 글쓰기는 사물과 타인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리를 드러내는 일 그 자체이다.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논문 “저자란 무엇인가?”에서 글쓰기 전반으로 확장된다. 푸코의 통찰에 따르면 유럽의 문화에서 글쓰기는 곧 희생이거나 삶의 희생 자체와 연결된다. 주체 자신을 잊는 것은 작가의 일상적인 존재 내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작품이 영원성을 만들 의무를 지는 곳에서, 그것은 저자를 죽일 권리를 얻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 부재의 특이성과 죽음과 저자 사이의 연결을 이해해야 한다. 글 속에서 저자는 그 자신의 글의 희생자가 된다”(Foucault, 1969:301).
<상당한 위험>이 글쓰기와 죽음과의 연관성을 간략히 언급하는데 그쳤다면, 이후 논문인 “저자란 무엇인가?”는 그 이후에 부여되는 의무를 언급하는데까지 나아간다. 푸코는 우리가 ‘저자는 사라졌다’는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저자의 사라짐 이후에 남은 빈 공간, 그것의 기능을 파헤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름은 기술(description)과 지시(designation) 사이를 배회한다. 그리고 저자가 그들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들은 기술적이거나 지시적인 기능 어느 한에 의해 완전히 규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저자와 그 이름 사이의 연결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그 이름 사이의 연결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름은 단순한 발화의 요소가 아니다. 저자 이름의 존재는 그것이 분류의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기능적이다. 하나의 저자 이름은 수많은 텍스트들을 묶어낼 수 있고, 그것들을 다른 것들과 구별할 수 있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저자의 이름은 담론의 특정한 존재 양상을 특징짓는다. 이러한 점들을 언급하며 푸코는 고유 명사는 담론의 내부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생산한 개인으로 나아가지만, 저자의 이름은 텍스트들의 윤곽 안에 머문다고 결론짓는다 – 각 텍스트들을 분리하고, 그것들의 형태를 결정짓고, 존재의 양상을 특징지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의 기능은 한 사회에서 특정한 담론의 존재, 순환, 작용을 특징짓는 것이다. 즉, 저자는 일종의 ‘담론의 기능’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푸코의 답변이 제시된다. 저자는 곧 ‘저자-기능’이다. ‘저자-기능’은 담론의 영역을 경계짓고, 결정하고, 분절하는 체계에 묶여있다. 그것은 모든 담론에서, 항상, 모든 문화권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텍스트가 단순히 저자에 의해 재건된다는 사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세하고 복잡한 일련의 과정에 의해 발생한다. 저자-기능은 다양한 자아와 주체적 지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순히 글을 쓴 실제적인 개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저자-기능은 “저자/독자/텍스트 모두가 속하는 장, 저자/독자/텍스트 모두를 탄생시킨 장, 저자/독자/텍스트가 서로 동시적, 상관적으로 생성되는 장, 곧 익명성의 구조, 익명의 언어작용이 작동하는 체계를 지칭한다”(p.86).
이렇게 저자는 개인이 아니고 저자-기능이며, 주체 없는 익명 언어작용의 체계이다. 이러한 통찰 속에서 푸코는 다음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론의 질서 속에서 주체와 같은 총체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 그것은 어떤 기능을 보여주는가? 각 담론에서 주체는 어떤 규칙을 따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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