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5.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읽고 쓴 메모

-읽을 책이 쌓여버렸다. 말그대로 책상에 중구난방으로 쌓여있다. 사놓고 안읽은 책이 다섯권 쯤 되는 것 같다. 얼른..읽어야지..읽어야지..종자기능사 끝나고 하루종일 책만 읽는다. 이렇게까지 공부 안하고 띵가띵가 책만 읽어도 되는걸까? 모르겠다.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없다. 요즘 잠 잘 못들어서 너무 피곤하긴 한데 그 김에 책 볼 시간은 늘어나서 좋다. 이렇게 건강 파탄나는거죠 뭐

0. <인터내셔널의 밤>을 읽고, 글이 좋아서 작가 인터뷰를 찾아봤다.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게 있길래 궁금해서 읽었다.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에세이집이고, 작가에 대해 잘 모르면 감상이 덜할만한 책인데 한국에는 이 책 말고 번역된게 없더라..이번에 처음 들어본 작가라 궁금해서 소설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읽고 싶은 소설이 학교 도서관에 없어서 한참 기다려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이렇게 외서 신청해 놓으면 너무 늦게 들어와서 도서관에 들어올때 쯤엔 안읽고 싶어진다. 이번엔 읽게 될까..

1. 첫 장을 읽고 기시감이 들어서 생각해보니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이 말한 네 가지 이유를 가져와서 챕터를 구성한 거였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 출판, 2010, pp.293-294.

2. 이 네 가지 이유를 따르면서도, 리비는 오웰이 놓친 부분들을 자신의 사적 경험을 통해 소명한다.

2-1. 정치적 의지. 리비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는 말로 첫 장을 시작한다. 이 눈물은 남아공과 영국을 전전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응축된 무언가이다. 정치라는 소제목을 달고서 폭발하는 감정으로서의 무언가(눈물)로 글을 시작하여 오웰의 이성적인 목적성을 부정한다. 정치적 의지는 잘 정리된 상념과 모토가 아닌, 경험으로 체화한 모든 것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것임을 리비의 글은 보여준다. 그게 가부장제 하의 ‘망상’이 준 억압의 기억이든, 물질적 생활(뒤라스)이든.

-그러고 보니 오웰이 ‘Political purpose’라고 쓴 것을 이 책은 ‘정치적 의지’라고 번역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원문에서도 Political purpose라고 쓴 것 같은데 왜 목적이 아닌 의지로 번역됐을지 궁금했다.

2-2. 역사적 동력. 영국 이주 전 리비의 삶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인권 운동을 하던 아버지의 구속, 대모 집의 암묵적인 폭력 등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리비의 사적 역사를 구성하고, 그의 글의 기반이 된다. 그런데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작가성의 기반이 된다면, 오웰이 말한 ‘역사적 충동’은 이러한 역사적 동력을 포괄할 수 있을까? 오웰의 역사적 충동 개념은 보고, 알아내고, 기록하기 위한 욕구를 지칭한다. 그런데 리비가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보고, 알고 싶어하지 않던 것이다. 삶의 경험은 글쓰기의 재료이지만 동시에 끌어안고 싶지 않은 무언가이기도 하다. 리비는 이런 아이러니함을 강조한다. 알고 싶지 않지만 알 수밖에 없는 것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든 행동의 기반이 되는 것들, 이러한 아이러니함은 오웰의 글에서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2-3. 순 이기주의. 비슷한 질문을 이어나갈 수 있다. 영국 이주 후, 영국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리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나로 응집했던 적이 없기에 무너질 일이 없는’ 자신의 정체성, 남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 영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들은 글을 쓰려는 이기적 동기를 구성한다. 여기서 이기적 동기가 정말 순전한, 외부 세계와 단절된 동기일 수 있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물론 오웰도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마음을 이기적 동기라 표현했다는 점에서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리비의 이기심은 겪어 온 억압 위에 있고, 리비는 그 지점을 강조한다. 이기심은 구성되는 그 순간부터 타인으로부터 침범되며 이기심의 발현 과정에서도 이 침범은 이어진다. 그렇기에 리비의 정체성은 작가성을 구성하면서도 동시에 작가되기를 방해한다 – “내가 다른 무엇보다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알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날 압도할 뿐이라 뭘 어찌해야 좋을지, 어디서 시작해야 좋을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런 타자의존성은 오웰의 글에서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2-4. 미적 열정. 리비는 ‘형식이 내용보다 커서는 안된다’고 말을 곱씹는다. 이 책이 말하는 미적 지향은 오히려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깨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 리비는 ‘끼어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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