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부터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삼키는 것과 뱉는 것으로 나눴다. 집 안에 상존하는 관계성 고름은 삼킨 것이며 결코 뱉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한 우울은 삼킨 것이며 삼키는 것에 익숙해져 더 이상 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제 저녁밥은 삼킨 것이자 뱉은 것이며, 앞으로도 끝까지 뱉고자 할 무언가이다. 여태 삼킨 것의 대부분은 삼키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뱉는 것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애초에 삼키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 전부터 서고모 톡방에 마태오관 하수구 근처에서 새끼고양이가 울고 있다는 이야기가 올라왔고, 이틀쯤 전에는 누군가 고양이를 꺼내 보호한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어제 낮에는 형제로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며칠 임보자도 안나오고 병원 진료도 받지 않은 채 고양이들이 야외에서 지내는 상황이 꽤 걱정스러웠다. 마침 동생 방이 10월까지 비기에 내가 몇 주 보호하겠다고 했다. 하필 어제는 일하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에 고양이 두 마리를 받아들고 병원에 뛰어가 진료를 받았다. 한 마리는 안구가 터졌다고 했고, 한 마리는 심박이 너무 약해 가망이 없다고 했다. 뭐가 됐든 걔네를 데리고 뛰어서 정하상관으로 돌아왔다. 1시가 되기 전에 누군가에게 맡기고 그 사람이 수업에 들어갈 때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해서 퇴근할 때 고양이를 다시 받아들었다. 와중에 택시비가 걱정되어 엄마에게 연락해서 사정사정 부탁을 했다. 엄마가 축제로 난장판인 학교 구석까지 와서 나와 고양이를 태웠다. 또 하필 어제는 동생 군복귀 전날이었다. 집에 와서 고양이 수유를 하고 배변 유도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동생 밥을 시키고 격려 몇 마디를 하는 그런 사회적인 활동을 했다. 수 시간 긴장을 한 상태였고, 점심도 저녁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10시쯤 기절하듯 잠들었다. 얼굴 아는 동물이 떠날 때의 감정을 안다. 잠들기 전 정 안붙이고 열심히 간호만 하겠다고 생각했다(잠결이라 이게 깨서 한 생각인지 자면서 꾼 꿈인지). 그러나 정을 붙이지 않으려면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소모적인 상황을 견딜 여유가 없으면 감정을 막을 수가 없다. 나는 몸도 마음도 마른 오징어같아서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대해 욕구가 없다. 그런데 자다가 삐약 소리에 깨서 본능적으로 젖병을 들었다. 발버둥치는 걸 억지로 막으면서 분유를 먹였다. 눈꺼풀을 열어 연고를 발랐다. 그러고 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왠지 잔 걸 후회할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억지로 글을 읽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특별했다. 뭔가에 열의를 가지다니. 그러고 보니 밤을 새며 고양이만 들여다 본게 고양이를 살리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혹은 흔치 않은 본능적인 열의를 멈추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아무튼 밤을 그렇게 보냈고, 밤을 그렇게 보내는 동안 고양이들 얼굴을 봐버렸고, 얼굴을 보면서 말도 걸었고 이름도 지어 불렀다.
점심에는 신도림에서 진료를 받았다. 여전히 담이는 가망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현이는 상태가 괜찮다고 했다. 눈 터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16만원 돈 되는 병원비는 콩님이 냈다. 고양이 임보한다고 했더니 대학원 동기도 의사도 좋은 일 한다고 했는데 창피했다. 지난 달 내 병원비는 보험비를 받아도 대충 120정도 나왔고, 월급은 140이었다. 나는 통장에 15만원이 남아있는 걸 알면서도 다음 주 월급날까지 콩님에게 돈을 빌릴 걸 생각하면서 임보를 시작했다. 일주일동안은 책임질 능력도 없으면서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거다. 아무튼 콩님이랑 광명본가에서 담이 현이를 돌봤다. 담이가 밥을 먹는데 고개도 입도 가누질 못했다. 핫팩을 깐 상자에 내려놓고 옷을 덮어줬다. 담이가 계속 낑낑대서 마음이 아팠고 잠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지만 현이 밥을 주는 것에 집중했다(하는 척했다).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콩님은 몰랐는지 그런 줄 알았으면 낑낑댈 때 현이 말고 담이를 봐줄걸 이라고 했다. 난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죄책감이 들었다. 적어도 콩님한테 말은 했어야 했는데. 난 조금 울었고 콩님은 안울었는데 이 차이는 알았는지 몰랐는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현이 숨소리가 너무 커서 걱정스러웠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숨을 못 쉬어서 못먹는 것 같았다. 다시 신도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콧물만 처리하면 되고 괜찮은 상태라고 했다. 입원이 필요한 건 아닌데 밤을 보내는 게 걱정되면 하루 입원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입원을 시키고 싶었다. 우선 말도 못하게 피곤했고, 돌봄을 잠시만이라도 전가하고 싶었다. 6만6천원이면 내가 치를 수 있는 가격이라고 생각했다(그치만 진료비를 합쳐서 10만원 돈이 나왔고 결국 콩님이 결제했다). 좀 더 큰 이유는 담이가 떠난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어젯밤에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담이가 가니까 밤을 다시 그렇게 보내는게 두려웠다. 오늘은 담이가 간 걸 바로 알 수 있었는데, 만약 기절할 듯 피곤한 오늘 밤에 현이가 아프다면 낑낑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뒤늦게 큰 일이 일어난걸 발견한다면, 모르겠다. 나는 차가운 고양이를 만질 자신이 없다. 오늘 담이를 보낸 건 담이가 아직 따뜻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말 비유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문자 그대로 차가운 고양이는 만질 수 없다.
-22. 6. 1.
현이를 그 다음 날 병원에서 데려왔다. 데려온 날 밤 현이도 낑낑대며 힘들어했다. 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계속 비틀거렸다. 콩님이 옆에 없었고 그래서 울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낑낑대며 경련하는 현이를 밤새 안고 지켜봤다. 아침 6시 좀 넘어서 결국 현이도 떠났다. 차가운 고양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는데 그냥 좀 많이 슬펐다. 고양이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 슬퍼하다가 왜 내가 고작 이틀 같이 보낸 고양이 때문에 밤을 새고 25만원을 당겨 쓰고 이게 내 세상의 모든 것처럼 굴고 있나 싶었다. 아니 나도 이 짓들이 좀 바보같다는 걸 아는데, 어미도 포기한 고양이를 내가 왜 만사 제쳐두고 돌보냐는 질문을 나도 안 한 건 아닌데 근데 안 돌볼 수가 있었나? 고양이를 받아 든 순간 고양이를 안 돌본다는 선택지가 없어진 것 같다.
아무래도 고양이와 골골송asmr과 kmr분유와 어쩌구들을 다 삼켜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느낀 적이 잘 없는데, 삼켜도 이질감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이것들이 내게 들어오면 평화로울 것 같았고 위로받을 것 같았고 이렇게 쓰자니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일이었던 것 같아 죄책감이 드는데. 아무튼 이 모든 걸 삼키고자 했던 건 얘네가 죽을락 말락 한 상태였기 때문일지도, 주는 밥을 계속 뱉었기 때문일지도, 아파서 비틀거렸기 때문일지도, 얘네 엄마아빠도 학교도 마포구도 세상 대부분이 얘네한테 신경을 안 썼기 때문일지도, 둘을 붙여놓으니 울음을 그쳤기 때문일지도, 등등 모르겠네…그냥 그런 존재들과 몇 주간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잠깐 행복회로를 돌렸었다. 내가 바보같은 며칠을 보낸 건 내가 진짜 바보같아서가 아니라 자잘하지만 본능적인 열의를 자아낸 이러한 이유들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뭔갈 먹을 때마다 아픈 고양이 냄새가 난다. 채 삼키지 못한 이 냄새를 조만간 마저 삼키게 된다면 앞으로 절대 뱉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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